8개월 전 결혼한 새댁 A씨. 그는 단꿈을 꾸기는커녕 신혼이 지독한 군사훈련 같다며 필자의 진료실에서 연방 눈물을 쏟아냈다. 연애 시절엔 스킨십에 소극적이던 남편을 때 묻지 않은 남성이라 내심 좋아했는데, 그야말로 단단히 오해한 것이었다.
설렘이 컸던 결혼 첫날밤, 순진한 신부는 남편으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남편은 단 한번도 성경험이 없는 아내에게 다짜고짜 자신의 위로 올라와 성행위를 하라고 강요했다.
침대에 송장처럼 누운 남편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며, 되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아내를 몰아세웠다. 이런 불평등한 성행위는 결혼 생활 내내 반복되었고 아내는 남편의 독특한 요구에 지쳐 버렸다.
성행위에 익숙한 부부 사이에 여성 상위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체위이지만, 첫 성행위부터 여성 상위만을 고집하는 남성은 숨겨진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A씨 남편의 경우 남성 상위의 체위에서는 발기도 사정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신이 누운 자세에서는 발기가 가능하기에 끝까지 아내에게 여성 상위를 고집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 상위 자세일 때 남성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반응을 보일 수 있다. 즉, 발기반응이 좀 더 낫고, 조루 현상이 잦아들고, 지루가 있던 남성도 다른 체위에 비해 사정 현상이 수월할 수 있다. 이는 누운 자세에 따른 전신 이완이 성기능의 기본 메커니즘인 자율신경계 반응을 좀 더 안정시켜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기능이 약간 차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특정 체위 이외에는 아예 비정상이라면 성기능장애로 봐야 한다. A씨의 남편은 특정 체위가 아니고서는 성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성’ 성기능장애에 해당된다.
상황성 성기능장애는 특정 체위뿐 아니라 특정 대상·시간·장소 등에서는 정상 반응이 나오고, 그 외의 환경에서는 전혀 성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다. 특히 대상에 따라 성반응이 제한될 때 배우자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런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 쉽다.
반면 문제의 당사자는 이래서 안 되네 저래서 안 되네 핑계가 많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성기능이 작동하니 ‘나는 정상인데 상대나 상황이 문제’라는 식의 주장을 꺾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상대를 사랑하지 않거나 상대방이 성적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기능장애의 한 형태일 뿐이다.
한마디로 상황성 성기능장애는 성기능의 ‘본질적인 고장’이 아니라 ‘오작동’이다. 특정 상황의 오작동을 교정하고 정상적인 성반응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면 다른 발기약이나 주사 등의 도움 없이 고칠 수 있다. 이런 유의 성기능장애는 성치료 기법을 제대로 아는 전문가라면 완치율이 대단히 높으니 해당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절망하지 말기를 바란다.
덧붙여 성기능이 정상인 남성도 신경 써야 할 상황이 있다. 성생활이 여전히 가능하다 해도 최근 들어 특정 체위나 방식만 고집하게 되고 그 외엔 반응이 떨어진다면, 이 또한 성기능이 점점 나빠진다는 적신호이니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