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연재
돔을 "지배하는 자," 섭을 "지배받는 자"라고 크게 양분해 봤을 때, 돔과 섭은 상대에 관해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녀야 한다.돔은 모든 권한을 송두리째 쥐고 있고, 섭은 모든 권리와 기본적인 인격마저 돔에게 박탈당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돔과 섭의역학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권리와 의무는 돔과 섭에게 동시에 주어져야 할 항목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숙명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또는 성장하면서 자생한 S적인 면과 M적인 면이 부딪혀서 창조되는 특이하고 독창적인 관계라 할 수있다. 많은 SM 사이트나 SM 카페에 오르는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섭은 "노예"요, 돔은 "주인"이라 표현되는 것에는 조금은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금전적 계약 등에 의해 물(질)리적으로, 불가피하게 엮어진 관계를 통상적으로 의미한다. 미국의 노예제도를묘사한 소설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되는 자는 자기가 정당한 물질적 대가를 지불했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자신의 "노예"의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노예 역시 이런 그릇된 "당위성"을 (강압적인 수단에 의해서일지라도) 마지못해 인정해 버리는것이다.
섭은 자신의 자율성을 무조건 포기하고 자신의 돔을 "자기를 완전히 버린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돔과 "감성적인합의"하에 타결되어진 선 내에서 모종의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섭이 돔을 받아들이는 일은 "강압"이아닌,"자유의지"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택한 돔과의 교류를 통해 자아 확인 및 자아 실현을 도모해 나가는것이다.
돔과 섭의 관계에서 직관력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돔-섭의 관계에서 직관력이 결여 되어 모든 것이 언어화되어야 교류가가능하다면 그 관계는 상당히 위태롭고 불안정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말 없이도 서로에게 오고가는"필(feeling)"을 감지할 능력과 더불어 상대의 속을 읽을 수 있는 열린 가슴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닫힌 가슴으로는자신의 욕망만 보일 뿐 상대의 욕망이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돔의 의견이 "Yes"이고, 섭의 의견이 절대적 "No"일 때,가능하면 서로 합의점을 도출해 내도록 노력해야 하고, 이것이 돔과 섭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공고히 해 주는 바탕이 될 것이다.
자기의 욕망이 섭의 거부에 의해 무산되는 경우에도 돔은 섭을, 말이나 행동으로 충분히 설득하고 다독거릴 넓은 가슴을 지녀야 한다.섭에게 돔이 커다란 그림자로 보이도록 돔 자신의 인내의 용적을 확장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섭에게관대하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섭을 압도할 위용과 당당함을 가지는 동시에 섭의 부족하고 미진한 부분을 넓은 품을 가지고받아들이라는 뜻이다. SM적 욕망은 철저히 자신이 "가장 자신이고 싶어하는 욕망" 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철저히 진실해 보고자 하는 단절시킬 수 없는 욕망" 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