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숨기기 급급했던 성문화와 성인용품 시장이 음지를 넘어 양지로 나온다. 으슥한 골목 사이에 어두운 분위기와 함께 자리잡고 있던 성인용품 매장이 대도시 주요 상권에 자리잡기 시작하는 등 성문화 인식 변화가 뚜렷하다.
2014년 성인용품 시장 전면 합법화 이후 지난 6월, 대법원이 리얼돌 통관 허용에 손을 들어주면서 이런 모양새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비록 갑론을박은 있으나 북미, 유럽 등 선진국의 예를 보면 오히려 늦었다는 평이 많다.
성문화 역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는 추세다. 한때는 ‘음란’, ‘외설’ 등 선정적인 단어로 홍보되던 AV 배우 내한 팬미팅 등이 팬과 소통하고 추억을 남기는 이벤트의 색깔을 띄면서 좋은 반응을 이끈다. 츠보미, 오구라 유나 등 AV 배우의 한국 유튜브 채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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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성인용품 브랜드 텐가(TENGA)社가 발표한 성인용품 매출 성장률은 이를 뚜렷이 보여준다. 한국 시장은 전년에 비해 무려 185%의 시장 성장률을 보였다. 이는 미국과 유럽을 뛰어넘는 수치였다.
국내 최대 규모 성인용품 쇼핑몰 바나나몰(㈜옐로우노벌티스)이 발표한 통계도 비슷하다. 2014년부터 매년 20% 이상 성장하던 성인용품 시장이 작년을 기점으로 50%이상 급성장했다. 콘돔과 러브젤 등 기본 제품뿐 아니라 남녀 자위 용품 판매 성장이 주목할 만하다.
성인용품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바나나몰 송용섭 기획팀장은 이를 성담론 변화라 말한다. 그는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글로벌 플랫폼이 발달했다. 보수적인 색깔이 강했던 한국도 선진국의 자연스런 영향과 함께 성에 대한 담론이 양지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2030세대의 인식 변화는 더 진하다. 성인용품 전체 수요 중 81%를 20대와 30대가 차지하고 있다. 송 팀장은 “발달한 성교육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성문화를 접한 2030세대가 현 성인용품 시장의 주요 고객”이라 전했다.
지난해 초박형 콘돔 통관 허용, 첫 장애인 전용 성인용품 출시에 이어 올해 리얼돌 시장까지 개방되는 시점에 있어 이러한 성인용품 시장의 약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AV 배우의 한국 진출도 돋보인다. 오프라인 이벤트뿐 아니라 온라인 영상 플랫폼에서의 변화도 뚜렷하다. 그저 외설적이라는 평과 함께 사회적 반발을 낳았던 방향은 점점 옅어지고, 오히려 소통과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특별시 청담동에서 열렸던 츠보미(つぼみ) 팬미팅이 대표적이다. 옷을 벗고 외설적인 춤을 추거나 관객과 농도 짙은 스킨십을 나누는 등 사회적 논란이 만연했던 AV 이벤트를 벗어나 대중적인 코드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방송국 보도까지 나올 정도로 긍정적 반응을 낳았다.
유튜브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올바른 성교육이라는 테마를 잡은 AV 배우 시미켄(しみけん),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 여자의 일상을 담은 오구라 유나(小倉由菜), 한국 방문기나 게임 얘기를 하고 있는 츠보미 등 대중을 타깃으로 한 콘텐츠가 사랑 받고 있다.
츠보미, 아오이 츠카사 등 유명 AV 배우의 한국 팬미팅을 주관했던 바나나몰 관계자는 “성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팬미팅과 콘텐츠도 그에 맞게 변하고 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방향보다 대중 친화적인 쪽으로 진화하는 중”이라 전했다.
반발의 의견이 없지 않다. 성인용품의 외관과 AV 배우 한국 진출에 반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리얼돌 관련 이슈는 청와대 청원까지 올랐다. 특히 여성 단체의 반발이 극심하다.
문화 전문가로 활동 중인 정윤하 칼럼니스트는 “삼권분립에 따라 결정된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기는 불가능”이라 말하는 한편,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구체적 법안 만들기가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라 말했다.
AV 배우의 한국 진출에 대한 갑론을박에도 입을 열었다. 그는 인터넷에 떠도는 ‘AV 배우는 일본 유튜브에서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에 대해 “근거 없는 낭설”이라 일축했다. 이미 다양한 배우가 현지에서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고 수익창출도 가능한 추세라고 덧붙였다.
최근 한국에 불어온 인기에 대해서는 “정부와 HTTPS 차단 등 성문화 통제 분위기가 오히려 강한 반발을 낳아 일종의 ‘반사효과’를 만들었다고 본다. 츠보미 등 AV 배우에 대한 합법적 소비는 앞으로도 강세를 보일 것”이라 전했다.
정 칼럼니스트는 “보다 올바른 성문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금지’, ‘규제’, ‘검열’ 등 무서운 단어를 갖다 붙일 것이 아니라 ‘토론’, ‘소통’, ‘협의’ 등 자유의 기본을 지키는 방향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