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돔은 실생활과 떼놓을 수 없는 생활 용품이자 의료기기다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지도 높은 피임 도구라 하면 단연 콘돔이 꼽힌다. 구하기 쉬우면서도 사용이 간편하다는 장점 때문에 다수의 인구가 콘돔을 애용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콘돔을 두고 ‘19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칭했다. 1950년대 발매돼 ‘여성의 해방’이라 불렸던 경구 피임약이 20세기의 혁명이라면, 콘돔은 19세기 이전부터 활약한 혁명의 원조다.
콘돔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보다 길다. 인간은 문명 사회를 이루기 시작할 때부터 피임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원치 않는 임신을 막고, 성병을 예방할 수 있는 즐거운 성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3대 욕구에 포함돼왔다.
고대 이집트 시대 벽화엔 천으로 만든 듯한 콘돔의 그림이 있으며, 고대 로마 시대에는 동물의 내장을 이용해 콘돔을 제작했다. 16세기 유럽의 귀족 사이에선 동물 가죽으로 만든 콘돔 사용이 유행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 야사를 보면 창호지를 콘돔처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때 콘돔은 매우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덧붙여 동물의 내장과 옷감으로 만든 콘돔은 피임 효과도 완벽하지 않았다. 고급 사치품이었다. 18세기 영국의 왕 찰스 2세가 애용했던 콘돔은 양의 맹장을 이용해 제작했는데, 굉장히 고가에 거래됐다.
1844년 찰스 굿이어의 고무경화법 발명이 본격적인 콘돔 대중화의 시작이다. 타이어 회사 이름으로도 익숙한 ‘굿 이어’는 탄력이 좋고 질긴 경화고무를 만들었고, 이 경화고무 기술로 콘돔의 대량 생산도 가능했다. 이어 1880년대 천연 고무 라텍스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성생활은 급격히 변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때 콘돔이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곤도무, 삭구라고 불렸다. 유흥가를 중심으로 피임보다는 성병을 예방하는데 주로 쓰였다. 콘돔은 경구 피임약보다 피임률이 떨어지는 편이나, 아무리 낮아도 80퍼센트 이상의 피임 효과가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성병 예방엔 최고다.
▲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매장에 진열된 갖가지 콘돔들.
감소하는 콘돔 사용률, 콘돔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콘돔 사용률은 굉장히 저조하다. 이마저도 태반이 올바르지 않은 콘돔 사용으로 피임에 실패하고 있다. 성을 뒤로 감추려는 문화와 보수적인 사회적 시선, 이로 인해 발생한 성교육의 부재 등이 만든 결과다
지난 10년을 돌아보자. 대한민국 성문화엔 많은 변화와 진보가 있었다. 세계적인 콘돔 브랜드 듀렉스가 듀렉스 코리아를 통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가 하면, 지난 수년 간 국내 수입이 불가했던 사가미 오리지널 0.01 콘돔이 국내 기업 바나나몰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여성용 성인용품이 합법화된 데 이어 2011년 남성용 성인용품도 합법화됐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2015년엔 간통죄가 폐지됐고, 2016년엔 여성 성인용품 판매증가율이 100%를 넘겼다.
피임법도 진화했다. 경구 피임약이 더욱 여성 친화적으로 발전했다. 오히려 생리불순이나 생리통 완화에 효과를 보는 여성들이 늘어,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경구 피임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콘돔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보다 더욱 얇고 튼튼하게 제조됐다. 한때는 간혹 불량품이 발견되던 천연 라텍스 콘돔의 경우 기술의 발전으로 불량률이 거의 없어졌다. 폴리우레탄 제조 기술로 0.01밀리미터의 콘돔이 발매되기에 이르렀다. 인체에 무해한 소재의 기능성 콘돔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피임 실정은 그러하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국내 성문화 인식과 피임법이 놀라운 진일보를 보여준 것에 반해, 피임율은 대폭 줄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콘돔은 심각한 감소폭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과 2015년에 나온 설문조사에서 콘돔 사용률은 고작 11퍼센트에 그쳤다. 2000년대 초반 콘돔 사용률이 35퍼센트였던 걸 감안하면 처참한 수치다. 3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11퍼센트에 속한 이들마저도 올바른 콘돔 사용 방법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의학 상담의 상당수를 ‘피임 실패’, ‘임신 여부’가 차지한다고 한다. 콘돔을 사용했음에도 임신이 의심된다는 고민도 있다. 심지어 콘돔 재사용의 안전 여부를 묻는 이도 있다. 그만큼 많은 남녀가 피임에 서툰 모습을 보인다.
자, 이쯤에서 질문해보자. 당신은 콘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 사가미 0.01 콘돔은 피임 기술 발전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 제공=바나나몰>
올바른 콘돔 사용을 위한 기초 상식
입는다고 다 똑같은 옷이 아니듯이, 씌운다고 다 똑같은 콘돔이 아니다. 콘돔의 피임 실패율은 최소 2퍼센트에서 최대 18퍼센트까지 치솟는다. 확실한 피임법이라는 인식이 강한 콘돔의 피임 실패율이 왜 이렇게까지 높아질까?
여러 이유가 거론되나 다수의 전문가가 꼽는 결정적 원인은 유통기한에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날 수 있다. 콘돔도 마찬가지다. 유통기한을 지키지 않고 남용하면 그만큼 피임 실패율이 증가한다.
보통 콘돔의 유통기한은 제조일자부터 3년에서 5년 정도다. 천연 라텍스에 윤활제가 포함된 경우가 많아 그렇다. 대부분 콘돔 포장 박스에 유통기한이 명시돼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콘돔은 윤활제가 마르고 급격히 노화돼 사용 중 파손될 확률이 높아진다.
콘돔의 재사용 여부도 마찬가지다. 콘돔은 1회용이다. 따라서 재사용은 불가하다. 한 번 사용한 콘돔은 내구성이 약해져 찢어지기 쉽다. 이는 피임 실패율이 높아지는 결과로 돌아온다.
성병 예방에도 좋지 않다. 콘돔이 찢어질 경우 성병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며, 한 번 사용해 타액 등이 묻은 콘돔을 재사용하면 타액에 묻은 미세 물질이 여성의 질 내부로 침투할 수 있다.
윤활제(젤)의 선택도 올바른 콘돔을 위한 상식이다. 만일 자신이 관계 도중 더 많은 윤활제가 필요하다 느낀다면, 지용성이 아닌 수용성 윤활제를 써야 완벽한 피임과 성병 예방이 가능하다.
여성의 질에서 나오는 분비액이 미끌미끌하니 이것을 오일과 같은 성분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성의 분비액의 오일 성분이 아니라 수분 성분이다. 베이비 오일, 바셀린 등을 윤활 목적으로 사용하면 콘돔이 손상되고 질 내부에 상처가 생기기 쉽다.
간혹 천연 라텍스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있다. 주로 여성이 많다. 질은 신체의 내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곳이다. 때문에 작은 접촉에도 쉽게 반응한다. 천연 라텍스 알레르기가 있을 경우 콘돔이 몸에 들어올 때 강한 이질감을 느낀다.
이런 여성이 천연 라텍스에 반복 노출될 경우 증상은 점점 심해진다. 이는 천연 라텍스에 존재하는 단백질 알레르기에서 출발하는데 이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스스로 항체를 만든다. 이 항체가 단백질 항원과 면역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사용자나 파트너가 따가움, 가려움 외 발진이나 염증 증상을 보인다면, 즉시 사용을 중지하고 의사와 상의할 것을 추천한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여성은 경구 피임약 복용률이 높다. 이는 콘돔 알레르기에 대한 상식과 정보가 꽤나 많이 전파됐기 때문이다.
심해지면 마치 벌에 쏘였을 때 일어나는 반응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며, 발작적인 호흡 곤란이 올 수 있다. 해외에서 경구 피임약의 발전과 신소재 콘돔 연구 등이 활발히 이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폴리우레탄 소재로 만들어진 콘돔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된다. 천연 라텍스 알레르기가 있는 이는 폴리우레탄 소재의 콘돔을 사용하는 게 좋다.
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 여건상 경구 피임약 복용률이 선진국처럼 높아질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위에서 말한 콘돔 사용에 대한 기초 상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올바르고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