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문화뉴스] 이제 우리는 어디로 사라져야 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집장촌 ‘청량리 588’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졌다. 그 이유는 서울시의 도로확장공사와 동대문구의 도시재개발 때문. 청량리 성매매집결지는 이 같은 도시계획의 예정지로 선정되어 시에 의해 수용돼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청량리 성매매 관련 업소들이 크게 타격을 받은 상황이기에 이번 도시계획의 역풍은 업소들에게는 엎친대 덮친 격.
따라서 청량리 588은 연쇄적인 퇴락의 길을 가능성이 높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계획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강하게 들려오고 있다. 특히 성매매종사자나 주변상인들은 확실한 보상 및 대책이 없는 이런 계획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 현실. 이들은 성매매종사자의 일터를 빼앗는다고 한목소리로 아우성이다. 서울시 및 동대문구의 도시계획이 인가되고 시공되는 순간까지 가열 찬 공방이 예상된다.
‘청 량리 588이 사라지는가’를 묻는다면, 정답은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이다. 정답의 근거는 서울시와 동대문구가 발표한 도시계획 때문. 서울시는 지난 13일 청량리 성매매집결지의 일부 구역의 도로를 확장하는 도시계획이 올해 3월 내지 4월 안에 인가된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르면, 답십리길∼롯데백화점 사이의 총연장 226m 도로의 도로 폭이 8m에서 32m로 대폭 확장된다. 도로확장은 3월말 착공되는 청량리 민자역사와 연계 교통망을 위한 시설이며, 도로확장을 위해 수용할 사유지가 바로 성매매집결지 일부인 것이다.
성매매업소들, ‘왜 청량리만 두들기는가’
아울러 동대문구는 청량리역 주변인 전농동 620일대 2만8천여평에 대해 2013년까지 의료 및 실버타운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의 ‘청량리 도시환경정비구역 변경지정안'을 마련, 최근 주민 공람공고를 마쳤다고 밝혔다. 이러한 서울시와 동대문구의 연타공격에 노출된 청량리 588은 몰락의 위기에 놓여있다. 지난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상당 부분 자생력을 잃은 상황에서 또 다시 시작된 한파이기에 “이번에는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게 구청 관계자들의 중론. 이 같은 서울시의 계획에 당장 된서리를 맞은 것은 청량리 588의 성매매종사자들이다.
기자가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대한 반응을 물으니 한 매매업종사자는 “걸핏하면 여기를 본보기로 삼아 두들기는 것은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한다. 항상 왜 이러냐”며 “이 계획은 미친 짓 ”이라고 흥분했다. 또 그녀는 “이미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남은 업소는 기존의 40%밖에 되지 않는다”며 “우리 보러 죽으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다른 한 종사자는 “기자들이 우리를 항상 음지처럼 묘사하고 고발하기에 우리가 이렇게 밀려나가는 것”이라고 취재에 불만을 표시한 뒤 “우리가 벌어들이는 외화만 생각해도 이런 어이없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본손님이 70% 이상이라면 말 다 한 것 아닌가. 일본 여행사에서는 아예 청량리 588을 관광코스에 포함시켜 놨다”며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량리 588에서 20년 간 업소를 운영했다는 김모씨는 “성매매특별법 이 후 청량리에서 경기도의 용주골로 많은 종사자가 이직했다”며, 유독 “성매매업과 관련 역사와 전통이 있는 청량리만 유독 표적으로 삼고 있는 듯 하다”며 서울시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 비판했다. 이런 성매매업소종사자들의 불만은 하나다.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한국은 성매매에 대해 법적으로는 불법, 사회적으로는 용인의 이중성을 가진 나라다. 따라서 법과 현실의 사이에 항상 딜레마가 존재하며 법에 상응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업소 주인 및 종사자들의 일반적 견해. 이 같은 성매매업소들만이 서울시 및 동대문구의 도시계획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주변에 동부청과시장 및 재래시장 상인과 노점상 상인, 숙박시설 주인 등도 한데 뭉쳐 반발하고 있다. 재래시장의 한 상인은 “지금이 개발독재시대도 아니고, 나는 공문이나 계획서를 본 적도 없다”고 전제한 후 “청계천 공사 때도 그랬고 무슨 커다란 공사를 할 때마다 피 보는 것은 힘없는 소상인들”이라며 하소연했다. 또 인터뷰 말미에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라며 여러 번 대책 부재에 대해 비판했다.
또 다른 한 상인은 “재래시장을 항상 문제삼아 현대식으로 개선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맞지가 않다. 중, 장년층은 아직도 재래시장의 분위기에 심취해있다”고 주장했다. 즉 젊은 세대의 소비욕구를 충족하는 기능을 하는 현대적인 대형 할인마트 등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나이든 세대의 욕구와 구미에 맞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시장들의 존재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반응은 이 도시계획이 꼭 달성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동대문구의 한 관계자는 “의료 및 실버타운 건설 예정지인 전농동 2만 8천여평은 부도심 지역이면서도 전체 건물 162개 중 1-2층짜리 저층 및 30년 이상된 노후 건축물이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집장촌, 저급 숙박시설, 재래시장, 노점상등이 형성돼있는 등 전반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개발압력이 높았던 곳”이라 설명한다. 한편 약 140개 성매매업소가 영업 중인 이 지역은 94년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업소종사자와 주변상인들의 강력한 반대로 제대로 된 재개발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현재 낙후된 도심지역에 대한 재개발은 지속 가능한 성장산업을 견인하고, 친환경적인 도시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등 그 효과성에 의해 하나의 커다란 세계적 추세로 받아들여진다”며 “지난 10여 년 넘게 청량리 588지역에 대한 재개발이 부진했는데 지난 성매매특별법 이후 업소의 영향력 및 규모가 급격히 낮아져 더 이상 조직화되고 강력한 저항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도시재개발은 커다란 세계적 추세’
하지만 성매매업소들과 주변상인 및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 계 획의 인가 이전과 이후의 시공 과정에서 반드시 다양한 의견수렴은 필수적인 듯 하다. 이와 관련, 동대문구의 관계자는 “주민의견 수렴과 서울시의 균형발전촉진지구 계획과 연계해 개발계획을 수정, 보안해 나갈 방침”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