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이 붓을 탓하랴
30대 여성 k씨는 필자의 진료실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이 무례한 남편은 모든 잠자리 문제가 아내 탓이라고 몰아세웠다고 한다. 물론 여성의 성기능 장애 때문에 남편이 성행위 때 좋은 느낌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여성이라도 제대로 흥분이 안 된 상태에서 성행위를 하면, 당사자인 여성도 상대인 남성도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
일부 남성은 성행위 때의 허술한 느낌에 대해 여성이 성경험이 많아 성기가 커지고 질이 헐렁해서 그렇다는, 수준 이하의 오해를 한다. 하지만 여성의 질은 근육으로 둘러싸인 기능성 공간으로 크기란 개념이 애초에 없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여성의 질처럼 괄약근으로 둘러싸인 항문이 대변을 많이 본다고 늘어나는가.
남자든 여자든 충분한 자극과 흥분이 있어야 적절한 신체반응이 나타난다. 남성은 흥분하면 혈류량이 증가하여 발기된다. 충분히 흥분되지 않으면 남성의 성기가 물렁물렁해서 이 상태로는 적절한 충만감을 느낄 수 없다. 남성이 얼마나 단단하게 발기했는지가 남녀 성기가 서로 밀착되는 정도와 성감을 상승시키는 한 축인 것은 당연하다.
또 다른 축은 남성의 발기에 견줄 만한 여성의 신체반응이다. 전희(前戱)로 여성이 흥분하면 질 근육은 평소보다 훨씬 탄력성을 갖게 되어 상대 남성이 느끼는 성감도 증가한다. 또 남성이 발기할 때처럼, 여성도 흥분하면 혈류량이 증가해 몸속의 질을 둘러싼 ‘전정’이라는 혈관주머니가 에어백처럼 부풀어 올라 남성의 성기를 감싸게 된다.
여성의 질을 둘러싼 혈관주머니는 마치 혈압을 잴 때 팔을 감싸는 공기주머니와 같다. 부풀어 올라야 공기주머니가 팔에 밀착되듯, 여성이 흥분해야 혈관주머니가 팽창해 남성의 성기와 밀착할 수 있다.
성행위 때의 ‘꽉 차고 조이는 느낌’은 질 근육의 탄력성, 질 주위 혈관주머니의 충분한 팽만, 그리고 남성의 적절한 발기가 있어야 극대화된다는 얘기다. 꽉 조이는 느낌을 만들겠다고 여성의 성기 크기를 줄이거나, 성기 속에 지방이나 심지어 구슬 같은 것을 집어넣는 시술은 이러한 성반응의 기본 이치와는 거리가 멀다. 부부의 불감증의 주 치료법으로 이러한 시술을 이용하는 것은 성기능 장애를 다룬 의학 교과서에도 없고, 명망 있는 성의학회에서 공인된 바도 없다.
신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성행위 때 밀착감을 못 느낀다면, 이는 남녀가 서로 제대로 된 성적 자극을 주지 못해 신체의 흥분반응이 나타나지 않아 그런 것이다. 따라서 전희를 통해 상대를 흥분시키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의 성적 쾌감과 만족도를 올리고 상대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귀찮으니 목석처럼 누워서 네가 알아서 나를 자극해 보라는 태도는 곤란하다. 예전보다 성반응이 부족하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의 흥분을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만 노를 저으면 나룻배는 그 자리에서 맴돌 뿐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과거 뱃사공들이 노를 저을 때 “어기야 디어차~ 어야디야” 하며 서로 박자를 맞췄듯이, 부부 생활을 할 때도 서로가 리듬을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