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주부들은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며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섹스가 귀찮은데 남편이 졸라 억지로 한다는 것이다. 성욕이 없으니 당연히 오르가즘을 느낄 리 없다.
성건강센터로 전화를 걸어온 주부 이미경씨(가명·36)는 “지금까지는 섹스를 하고 싶은 욕구도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젠 오르가즘을 느끼고 싶다”고 토로했다. 웬만한 상담은 전화로 끝내는 편이지만, 이씨는 상담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상담은 보통 두 시간씩 2회에 걸쳐 진행한다. 상담을 할 때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뿐 아니라 개인의 성 역사를 낱낱이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똑같아도 이유는 저마다 달라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우선 이씨에게 당뇨나 고혈압 같은 성인병이 있는지,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약이 있는지 등 의학적인 부분부터 체크를 했다. 감기 환자에게 감기약을 처방하지 않은 채 심리치료만 하면 쉽게 치료가 되지 않는 것처럼 신체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부터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씨의 경우 신체적인 문제는 없었다.
결혼 10년 차인 그는 남편이 대기업 과장이고, 시부모를 모시고 살며, 한창 자라는 아이 둘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집안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피곤한데다 함께 사는 시부모가 신경 쓰여 섹스를 해도 불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언제부턴가 성욕이 줄고, 오르가즘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처음엔 잠자리를 너무 안 하면 남편이 바람을 피울까봐 억지로라도 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경험상 남편이 오늘 사정을 하면 다음 날은 섹스를 할 욕구가 없다는 걸 안다. 또한 남자들은 오랫동안 섹스를 안 하면 여자를 찾아 돌아다닌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자신은 하고 싶지 않더라도 남편이 외도를 못하도록 억지로라도 의무방어전을 한다. 이씨도 이런 식으로 남편을 관리해온 셈이다.
나는 그에게 전에는 오르가즘을 느낀 적이 있는지 물었다. 지금까지 오르가즘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는지, 결혼 전에 다른 애인이랑 했을 때는 느꼈는데 지금 남편하고는 못 느끼는 건지, 신혼 초엔 느꼈는데 지금은 못 느끼는 건지, 아니면 너무 가끔 느끼는 건지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씨는 신혼 초엔 섹스가 즐겁고 오르가즘도 느끼곤 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부부관계, 특히 남편과 섹스를 할 때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보았다. 이씨는 부부관계가 10년이 넘어가면서 거의 똑같은 패턴의 섹스를 해왔다고 했다. 여자가 오르가즘을 느끼려면 애무를 충분히 해줘야 하는데 남편은 우리나라 보통 남성들처럼 삽입 위주의 섹스를 해온 것이다.
이씨의 경우는 원인이 비교적 간단했다. 살림과 아이 양육에 몸이 피곤한데다, 늘 똑같은 체위만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욕구가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의무감에 억지로 성관계를 한 것이 더욱 흥미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됐다. 신혼 때는 섹스가 생활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10%도 안되게 된다. 그러면서 섹스가 자꾸 뜸해져 가는데, 하면 할수록 개발되고 안 하면 안 할수록 쇠퇴하는 게 성기능이다.
의뢰자는 자기 입장에서만 얘기하기 쉽기 때문에 의뢰인 상담이 끝난 후 반드시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 양쪽의 얘기를 다 들어야 정확한 원인이 나온다. 또한 성문제는 한쪽에만 문제가 있어서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쪽이 더 크냐의 차이일 뿐 책임은 양쪽 모두에게 있다. 예를 들어 여자가 오르가즘을 못 느낀다고 하면 남자가 테크닉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
결혼 후 육아와 집안 살림으로 지쳐 성욕 감퇴한 경우
그런데 배우자에게 상담을 받도록 설득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서양은 90%가 넘는 배우자가 상담에 응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10%도 안된다. 이씨의 남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상담이 필요하다는 말에 “아내에게 문제가 있을 뿐이다. 아내만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거부감을 나타냈다.
나는 그에게 섹스도 둘이 하듯이 성문제도 둘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걸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남편은 나를 찾아왔고, 그에게 부부관계에 대한 충분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