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864년, 프랑스의 알비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에서도 굴지의 명문가, 백작가 출신이었죠.
어렸을 때에는 주변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났지만, 13살이 되던 해 집에서 놀다 넘어져 왼쪽 다리가 부러졌고, 14살이 되자 이번에는 산책 도중 도랑에 빠져 오른발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하반신 성장이 완전히 멈추고 만 로트레크.
성인이 되어서도 키가 150cm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위키피디어에 따르면 154cm라고 되어있습니다).
넘어졌을 뿐인데 다리가 부러진 점으로 미루어, 로트레크가 원래부터 뼈가 약했거나 유전적인 장애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의심됩니다.
그런 핸디캡을 가진 로트레크는 그 뒤 파리 대학에 입학이 예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 파리로 나가 그림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에밀 베르나르, 고흐와 만났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화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로트레크의 작품은 카바레 무용수나 창녀 등 밤의 여인들을 그린 것이 많았는데, 퇴폐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으면서도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는 내용이 특징입니다.
(물랭 가, 1894년)
위 그림은 창녀들이 성병 검사를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소재로 삼는 부분이 참 로트레크답다고 해야 할까요?
이러한 작풍은 사실 그의 사생활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로트레크는 밤이면 밤마다 카바레나 술집을 드나들며 폭음을 하고, 여자를 안았습니다.
퇴폐주의, 데카당스한 생활이었죠.
그러한 퇴폐적인 생활 속에서 만난 여인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사회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던 그녀들과 신체적 장애를 가진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 하면서 깊은 동정과 공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로트레크의 몸에는 또 다른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작은 키, 짧은 두 다리와는 별개로 이상할 정도로 거대한 페니스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거대한 페니스를 지녔기에 평범한 여성들은 그와 육체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았고(로트레크는 평생 독신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로 창녀들은 그를 따뜻하게 받아들여주었다…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의 거대한 페니스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밤거리의 여인들에게 한층 더 강렬한 공감을 품고 있었다…그렇게도 볼 수 있겠죠.
그런 사정이 있었기에, 밤거리의 여인들을 왠지 모르게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랭 루주의 무도회, 1890년)
갖가지 명작을 세상에 내놓은 로트레크. 하지만 그의 퇴폐적인 생활은 결국 그에게 매독을 안겨다주고 말았습니다.
대표적인 성병 중 하나인 매독은 현재라면 페니실린 주사로 치료할 수 있지만, 페니실린이 등장한 것이 1940년대이기 때문에 로트레크가 살았던 당시에는 제대로 된 치료법이 없었죠. 그는 그렇게 점점 쇠약해져갔습니다.
요양원에 들어가서도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던 그는, 1901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