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는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 다시 말해 동양인으로서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뿌리 박혀 있는 정서요, 경험의 축적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예를 들어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어, 시원해!’라고 말하는 우리의 정서를 서양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대를 이어 몸으로 알고있는 우리들은 ‘기운이 없다’, ‘기가 세다’, ‘기분이 나쁘다’,‘기가 차다’, ‘기선을 제압하다’,‘기가 죽었다’ 등 일상 사용하는 언어로서 기라는 개념을 터득하고 있다. 우리가 무심해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살아온 방식 자체가 기(氣)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삼지 않은 것이 없다.
형태는 없지만 성질은 분명히 작용(無形有質)하는 기(氣)라는 개념은 동양에서 생성된 것으로, 자연과의 균형과 조화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우리의 대 자연관 내지는 대 인간관이라는 총체적 인식체계를 형성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기본 개념이다.
기 신봉자들은 신(神) 대신 기라는 개념을 대입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지만 사실 우리의 전통사상은 ‘누가 세상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쪽에 핵심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자연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화하는가를 알면,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으로서 자연을 거역하지 않고 자연과 동화되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실리적인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기라는 개념적 존재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면 삶이 그만큼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우선 기는 다양·다종한 형식으로 구분되고 설명되며 활용된다.
가장 단순한 1차원적인 분류는 인간의 육체를 기준으로 이로운 기와 해로운 기로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이해하려면 인간을 구성하는 기운의 성질을 먼저 파악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원기(元氣)다.
원기는 다시 3가지로 분류되는데 이것은 우리의 전통사상 가운데 으뜸되는 천지인(天·地·人)삼재(三才)사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 첫번째는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아가지고 나오는 근원정기(根源精氣), 두번째는 음식물의 에센스로부터 얻어지는 수곡지기(水穀地氣), 세번째는 호흡을 통해 우리 몸 안팎을 출입하는 호흡지기(呼吸之氣)다.
타고난 근원정기 외에 음(陰)기운인 수곡지기와 양(陽)기운인 호흡지기를 균형되게 보충해 주어만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되어있다.
원기를 구성하는 세 가지 기운 기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뭇잎을 흔들리게 하는 바람과 같은 존재로서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가장 필요한 물과 같은 성질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기를 설명하면서 바람과 물이라는‘풍수(風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풍수는 단순히 땅의 기운을 찾는 풍수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의미를 가리킨다.
기는 우리의 몸 속에 있는 경락(經絡)이라고 하는 길을 따라 흐른다. 동시에 기의 흐름은 곧바로 혈액의 순환을 주도한다. 서양의학적으로는‘혈액순환’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우리는‘기혈순환’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적당히 머물러야 하며 막히거나 정체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반드시 재앙을 부른다.
기 역시 흐름이 정체되면 뭉쳐 기울현상을 일으키고, 기가‘체’하면 피가 뭉쳐 어혈(瘀血)이 된다. 기가 끊기면 피도 끊겨 기절(氣絶)한다. 전체적으로 기의 총량이 부족한 사람에게 기가 채워지면‘기 차게’좋지만, 가득 찬 채 흐르지 못하면‘기가 차서’말도 안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물을 다스리는 것 즉 치수가 곧 백성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던 군주가 현군으로 추앙받듯 기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현자라 불리는 이유다.
우리말 중에는 근력(筋力) 또는 기력(氣力)이라는 말이 있다. 근육이 발달하고 힘이 센 그래서 근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기력이 부족하면 병이 들 수밖에 없다. 동시에 나이가 들어 근력이 떨어지더라도 기력이 정정하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기력이 정정한 어르신’들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기력이란‘원기의 힘’을 말한다.
따라서 원기를 구성하는 세 가지 기운 가운데 한 가지라도 균형과 조화에서 벗어나면 기력이 떨어지는 것이고 이것은 곧바로 문제(疾病)를 발생시킨다. 우리는 흔히 성(性)적인 에너지를 정력(精力)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근원정기의 경우 줄임말로,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았고 다시 후손에게 물려주는 생산과 관련된 기운이다보니 그렇게 사용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선조들 가운데 농사가 주업이던 농부들은 “곡기를 채워야 뱃심이 생겨 일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람 말씀하셨다. 춥고 배고프던 궁휼의 계절에는 아이들도 함부로 뛰어놀지 못하게 하셨다. 먹을 것도 넉넉치 않은데 “배가 꺼질까”를 두려워하신 것이다. 반면 비교적 먹을거리 걱정이 덜하면서 힘을 쓸 필요가 없는 양반님네들은 도인술이니 앵생술이니 하는 호흡법을 위주로 하는 건강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3가지 기운을 제각기 나름대로 조절한 것이다.